우리가 ‘클라우드’라고 부르는 디지털 세계는 실제로 바다 밑에 놓인 가느다란 광섬유 케이블에 크게 의존하며, 이 케이블이 국가안보의 최전선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핵심에는 실제 케이블이 있다
국가와 대륙 사이를 오가는 인터넷 데이터의 대부분은 위성이 아니라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 이동합니다. NATO는 해저 데이터 케이블이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95% 이상을 전달하는 핵심 인프라라고 설명합니다.
수십억 명의 데이터를 전달하지만 심해 구간의 케이블은 의외로 정원용 호스 정도의 굵기입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가느다란 광섬유를 통해 영상, 금융정보, 기업 데이터와 정부 통신이 빛의 형태로 이동합니다.
이번 사건의 무대는 스발바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와 노르웨이 본토 사이에는 각각 약 1,400km 길이의 해저 광섬유 케이블 두 개가 연결돼 있습니다. 깊은 곳에서는 수심 약 2,700m에 놓여 있습니다.
이 케이블은 일반 인터넷뿐 아니라 스발바르의 위성 지상국 SvalSat에서 내려받은 막대한 위성 데이터도 전달합니다. SvalSat은 세계 최대 규모의 위성 지상국이며 NASA의 Near Space Network에도 포함됩니다.
올봄 바다 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Reuters가 서방 당국자 두 명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2026년 봄 러시아의 심해전 조직인 GUGI가 스발바르 인근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당국자들은 러시아 측이 심해 잠수정을 이용해 중요 해저 케이블을 손상시키는 기술의 배치를 모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영국·노르웨이·미국이 공동으로 러시아 함정을 추적하고 바다에서 대응했으며, 러시아 측은 훈련을 끝까지 완료하지 못하고 해당 지역을 떠났다는 것이 보도의 핵심입니다.
실제 케이블이 절단되거나 손상된 것은 아닙니다. 현재 공개된 내용은 복수의 서방 당국자들이 제공한 정보에 근거한 Reuters 보도입니다.
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공격’이 더 위험할까
해저 케이블이 손상되면 원인이 선박의 닻인지, 어업 장비인지, 자연재해인지, 고의적 파괴공작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공격자를 명확히 특정하기 어렵다면 대응과 책임 추궁도 어려워집니다.
이 때문에 해저 인프라는 명백한 전쟁행위와 평시 활동의 경계에서 이뤄지는 회색지대 위협의 대표적인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케이블 하나가 끊어지면 인터넷이 모두 멈출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터넷은 여러 경로로 데이터를 우회시키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고속도로 하나가 막혀도 다른 도로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특정 지역으로 연결되는 여러 케이블이 동시에 손상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 인터넷 속도 저하와 네트워크 용량 감소
- 은행·주식·외환·신용카드 등 금융거래 장애
- 클라우드와 기업 데이터 접속 문제
- 통신망과 위성 데이터 전달 장애
특히 섬이나 북극 지역처럼 대체 경로가 많지 않은 곳은 더 취약합니다.
위성 인터넷이 대신할 수 있을까?
Starlink 같은 위성 통신은 중요한 보조·비상 통신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세계 인터넷의 막대한 데이터량을 위성만으로 처리하기는 어렵습니다.
광섬유는 큰 전송용량, 낮은 지연시간, 데이터당 낮은 전송비용이라는 강점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해저 케이블, 위성, 지상망을 함께 사용하는 다중 경로 통신망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통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다 밑에는 통신 케이블뿐 아니라 전력 케이블, 가스관과 에너지 파이프라인도 지나갑니다. NATO는 이를 묶어 핵심 해저 인프라(Critical Undersea Infrastructure)라고 부릅니다.
유럽의 인식이 크게 바뀐 계기 중 하나는 2022년 Nord Stream 가스관 폭발 사건입니다. 이후 발트해에서도 통신·전력 케이블 손상 사건이 이어졌고, NATO는 해저 인프라 감시를 강화했습니다.
NATO는 어떻게 감시하고 있나
NATO는 발트해 핵심 인프라 보호를 위해 Baltic Sentry 활동을 강화했습니다. 군함, 해상초계기, 항공자산과 무인시스템을 활용해 케이블 주변의 이상 움직임을 더 빨리 파악하려는 목적입니다.
Mainsail 같은 분석 시스템은 선박 항로와 속도 변화를 분석해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는 선박을 찾습니다. 정상 항로를 벗어나거나 속도를 줄인 채 케이블 위를 반복 이동한다면 관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복구는 여전히 매우 아날로그적이다
케이블이 끊어지면 수리선을 보내 고장 위치를 찾고, 수천m 아래의 케이블을 끌어올려 손상 부분을 제거한 뒤 광섬유를 다시 연결해야 합니다. 날씨가 나쁘거나 수리선이 멀리 있다면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첨단 인터넷의 약점이 의외로 매우 아날로그적인 수리 과정에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중화와 회복탄력성이 중요하다
케이블이 어디에 몰려 있고 어느 지점이 병목인지, 어떤 국가에 우회경로가 부족한지는 중요한 전략정보가 됩니다. 미래 인프라 설계에서는 더 빠른 케이블만큼 한 곳이 공격받아도 다른 길로 통신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합니다.
이를 네트워크에서는 이중화·다중화인 Redundancy, 장애나 공격에도 서비스를 유지하고 빠르게 복구하는 능력을 Resilience라고 합니다.
한국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이 해외 인터넷 서비스와 클라우드에 접속하려면 국제 통신망이 필요합니다. 한국 역시 일본, 미국, 동남아시아 등 여러 지역과 해저 광케이블로 연결돼 있습니다.
Netflix, YouTube, 해외 클라우드, 글로벌 금융서비스와 기업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사용하려면 국제망이 필수입니다. 따라서 해저 케이블 보안은 한국의 디지털 안보와 직접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사이버보안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안전하고 암호화와 방화벽이 강력해도 데이터가 지나가는 물리적인 선이 끊어지면 통신은 멈출 수 있습니다. 현대 사이버보안은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해저 케이블, 위성, 전력망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꼭 구분해야 할 사실
“러시아가 NATO의 인터넷 케이블을 절단했다”라고 쓰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 서방 당국자들은 러시아 GUGI가 케이블 무력화 기술 배치를 모의했다고 평가했습니다.
- 영국·노르웨이·미국이 이를 추적하고 대응했습니다.
- 러시아 함정은 훈련을 완료하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 실제 케이블 손상은 없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Reuters의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으며, 러시아 정부는 NATO 국가를 대상으로 한 파괴공작이나 NATO와의 충돌을 계획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부인해왔습니다.
핵심용어 한 줄 사전
핵심 정리
- Reuters는 2026년 9월 10일 영국·노르웨이·미국이 스발바르 인근에서 러시아의 해저 케이블 관련 훈련을 포착하고 저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스발바르와 노르웨이 본토 사이에는 각각 약 1,400km인 광섬유 케이블 두 개가 있으며 최대 약 2,700m 깊이에 놓여 있습니다.
- 이 케이블은 SvalSat에서 내려받은 위성 데이터도 전달합니다.
- 실제 케이블이 절단되거나 손상된 것은 아닙니다.
- 미래 인터넷의 경쟁력은 속도뿐 아니라 공격과 장애에도 작동하는 회복탄력성에 달려 있습니다.